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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넷플릭스 (연상호, 박정민, 인간 염증)

by JB글로벌 2026. 3. 1.

박정민이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1초 만에 출연을 확정했고,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기립박수를 받은 영화가 있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얼굴'입니다. 일반적으로 연상호 감독 하면 넷플릭스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이번 극장 개봉작을 보고 나서 그의 진짜 색깔이 극장에서 더 짙게 드러난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인간 염증 세계관

연상호 감독을 넷플릭스의 아들로 부르는 분들도 있지만, 제 경험상 그의 본질은 애니메이션 시절부터 쌓아온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에 있습니다. 여기서 인간 염증이란 단순히 불쾌함을 넘어 인간 내면의 추악함을 직면하게 만드는 연출 방식을 의미합니다. 상업 영화로 전향한 뒤에도 그는 여전히 이 특유의 시선을 놓지 않았습니다.

'얼굴'은 50년간 정각 장인으로 살아온 시각장애인 영규와 그의 아들 동환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어느 날 동환에게 경찰서에서 연락이 옵니다. 생전 처음 듣는 이름, 정영희. 그녀는 동환의 친모였고, 40년 전 백골로 발견된 상태였습니다. 평생 어머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났다고 믿었던 동환은 혼란에 빠집니다.

장례식장에 나타난 어머니의 가족들은 조문이 아닌 유산 사수가 목적이었습니다. 솔직히 이 장면에서부터 저는 이 영화가 보통 미스터리 스릴러가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그들은 동환에게 각서를 요구하며 녹음까지 하겠다고 나섭니다. 동환이 영정 사진 한 장만 달라고 부탁하자, 이모들은 "영희는 얼굴이 못생겨서 사진 찍는 걸 싫어했다"며 거짓말을 늘어놓습니다.

PD의 도움으로 과거를 추적하던 동환은 어머니가 일했던 청풍 피복 공장의 동료들을 만납니다. 1980년대 경제 호황기,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던 공장에서 영희는 성실하고 착한 직원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녀의 외모를 흉보며 말을 아낍니다. 실마리가 끊긴 듯 보이던 순간, 한 동료가 "사장님이랑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다"고 입을 엽니다.

영화는 현대와 과거를 넘나들며 박정민의 1인 2역 연기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1인 2역이란 단순히 배역이 둘이라는 의미를 넘어, 시각장애인 아버지와 평범한 아들이라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동시에 구현하는 고난도 연기를 뜻합니다. 저는 특히 과거 회상 장면에서 그의 디테일한 연기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추악함의 진짜 얼굴

일반적으로 미스터리 영화는 범인을 찾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만, '얼굴'은 인간 내면의 추악함을 파헤치는 데 집중합니다. 초중반까지 메인 빌런은 영희의 사장이었던 백주상처럼 보입니다.  영화는 이를 1980년대 경제 성장기의 어두운 이면으로 제시합니다.

영희가 이를 문제 삼자 백주상은 조폭까지 동원합니다. 그러나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납니다. 백주상의 부하들이 산에 갔을 때, 영규가 죽은 영희를 산에 던지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겁니다. 최종 빌런은 남편 영규였습니다.

더 충격적인 건 살인 동기입니다. 시각장애인 영규는 영희가 예쁜 줄 알고 결혼했습니다. 백주상을 비롯한 시장 사람들이 장애인을 놀리려고 "못생긴 여자"를 소개한 겁니다. 영규의 분노는 자신을 속인 사람들이 아닌, 못생긴 외모로 자신의 가치를 낮췄다고 생각한 아내에게 향합니다.

제 생각에 이 지점이 연상호 감독이 진짜 말하고 싶었던 부분입니다. 가해자에게 분노하지 않고 피해자를 원망하는 왜곡된 심리. 영희가 백주상과 충돌하자 영규는 화를 참지 못하고 그녀를 살해합니다. 한국 형법상 공소시효는 살인죄의 경우 2015년 이전 사건에 대해서는 15년에서 25년이었는데, 영화 속 사건은 40년 전이라 이미 시효가 지난 상태입니다(출처: 대한민국 법원 전자민원센터).

영화 속 인물들은 신현빈이 연기한 정영희를 제외하면 모두가 인간 염증을 유발합니다. 주요 인물들의 문제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영규: 피해자인 아내를 원망하며 살해한 가해자
  • 백주상: 여직원을 성폭행하고 협박한 사업주
  • 영희의 가족들: 유산만 챙기려 하고 조카를 외면한 이모들
  • 시장 사람들: 장애인을 놀리려고 거짓말한 방관자들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화가 많이 났습니다. 연상호 감독은 인간의 추악함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극장에서 나오면서 옆 관객과 눈이 마주쳤는데, 서로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그만큼 무겁고 불편한 감정이 남는 영화입니다.

동환은 결국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습니다. 이미 시효가 지났고, 시각장애인인 아버지를 감옥에 보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그는 평생 이 비밀을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영화는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집니다. 법적 처벌이 불가능한 범죄 앞에서 피해자의 가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얼굴'은 2024년 9월 극장 개봉 후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고, 개봉 전 157개국에 선판매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제 경험상 연상호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불편하면서도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영화입니다. 넷플릭스에서 이 작품을 접하실 분들께는 미리 말씀드립니다. 편하게 볼 영화가 아닙니다. 하지만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원하신다면, 반드시 봐야 할 작품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HSm7fvMHe8E